진행자: 백신 면제 특혜 의혹에서 호주 입국 거부 및 난민 격리시설 수용의 수모를 겪은 노박 조코비치가 입국 금지 효력 정지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올해의 첫 메이저 대회 호주 오픈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어제 멜버른의 연방순회법정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조코비치의 모국 세르비아에서는 대통령과 외무장관까지 나서 호주에 거센 항의를 제기했고, 멜버른의 난민 수용 격리 호텔 앞에는 세르비아 계 교민들이 연일 조코비치를 격려하고 호주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호주한인동포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저희 SBS 한국어 프로그램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뜨거운 반응이었는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조코비치에 대한 반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원색적인 비난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는데 좀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영국 BBC의 심층 보도가 매우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코비치에 대한 호주의 반감이 드러난 사태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이수민 리포터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호주오픈 4연패, 호주오픈 통산 우승 10회, 메이저 대회 통산 21회 우승의 역사적 기록에 도전하는 노박 조코비치가 만약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였다면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제기될 정도인 것 같아요.
이수민 리포터: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는 호주에서 수모를 겪고 있는 노박 조코비치죠… 현재 남자 테니스의 빅 3 가운데 로저 페더러는 16위, 라파엘 나달은 6위입니다.
그런데 분명 호주 국내적으로 로저 페더러의 인기는 압도적입니다. 노박 조코비치의 인기는 라파엘 나달에게도 뒤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로저 페더러는 전성기가 한참 지났지만,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19년 연속 선정됐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고요,
나달 역시 오랜 시간 페더러의 라이벌로 군림하며 많은 팬을 확보한 반면 조코비치는 이 둘에 비하면 다소 약한 '팬덤'을 가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죠.
진행자: 아무튼 이번 호주 입국 거부 사태를 통해 조코비치를 둘러싼 양비론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영국 BBC 방송은 호주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조코비치 소식을 다루며 '왜 세계 1위 선수인데 평가가 양극단으로 나뉘는가'라는 분석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죠.
이수민 리포터: 네. 조코비치는 5일 밤 11시 경 멜버른 공항 도착한 후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공항에 억류된 후 결국 공항인근의 난민 희망자 격리 호텔에 사실상 감금됐는데요…. 이 직후 조코비치의 부친 스르잔 씨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주와 서방이 조코비치가 세르비아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직격했습니다.
진행자: 조코비치가 동유럽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이나 유럽 팬들이 그를 페더러나 나달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이수민 리포터: 그렇죠. 이번 호주 입국 거부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동유럽 출신 차별론'이 등장한 셈이죠.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편견도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BBC는 먼저 2019년 윔블던 결승전을 하나의 사례로 들었는데요.
당시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격돌한 이 경기에서 팬 대부분이 페더러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던 것이죠. BBC는 "테니스 코트가 아니라 축구 경기장 같았다"고 묘사했습니다.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맞붙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페더러에 대한 일방적 응원이 이어졌는데요… 하지만 이를 두고 조코비치가 동유럽 그것도 세르비아 출신이라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페더러가 어쩌면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장'을 예우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조코비치가 38살 때 자신보다 6살 어린 미국이나 서유럽 선수와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만난다면 팬들은 조코비치에게 더 많은 응원을 보낼 것이라는 자의적인 해석도 부연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솔직히, 세르비아 출신인 조코비치를 좋아하지 않는 팬들도 분명히 많은 것 같아요.
이수민 리포터: 네. BBC는 그가 일으킨 여러 논란들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조코비치가 문제를 많이 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해 호주오픈 8강에서 조코비치는 미국의 테일러 프리츠를 상대하며 복근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듯하다가 결국 3-2로 이겼는데요.
프리츠는 패한 뒤 "정말 복근 상태가 안 좋았다면 기권했을 것"이라며 조코비치의 '꾀병'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또 2020년 US오픈 때는 공으로 선심을 맞혀 실격패 당하기도 했고,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던 2020년 6월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에서 미니 투어를 개최했다가 참가한 선수와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었죠.
이때 조코비치도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고, 지난해 말에도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호주오픈 때는 호주 입국 후 방역 수칙을 완화해달라고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진행자: 그런가 하면 조코비치 팬들은 조코비치가 팬들에게 친근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선행에도 앞장선다는 점을 앞세운다면서요.
이수민 리포터: 네. BBC는 조코비치가 논란의 주인공이면서도 페더러나 나달만큼 팬들의 응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분석해 시선을 끌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동작을 흉내 내거나 코트 인터뷰 때 구사하는 재치 있는 유머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지난해 US오픈 결승전 도중 조코비치가 흘린 눈물도 그 증거라는 것이죠. 당시 조코비치는 러시아의 다닐 메드베데프를 상대로 한 결승전을 이겼더라면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죠.
조코비치가 1, 2세트를 내주고 3세트에서도 2-5로 끌려가다 4-5로 겨우 추격하던 때 미국 뉴욕 팬들이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박수를 보냈음은 기억에 생생합니다.
조코비치는 경기 도중에도 눈물을 참지 못했고, 결국 경기에서는 졌지만 인터뷰에서 "뉴욕에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며 "여러분의 응원 덕에 제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코트에서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감격해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진행자: 사실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코비치가 메이저 대회에서 페더러나 나달만큼의 응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요.
이수민 리포터: 네. BBC도 "조코비치는 특히 메이저 대회에서 페더러나 나달만큼의 응원을 받아본 적이 없고, 특히 US오픈에서는 때때로 적대적인 반응도 나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세르비아의 한 기자는 BBC와 인터뷰에서 "조코비치가 불공평한 대우를 오랜 기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가 가끔 저지르는 실수들은 그런 대접의 빌미가 됐고, 그의 긍정적인 부분들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아무튼 이번 조코비치의 호주 입국 거부 사태를 '동유럽 출신 선수 차별'로 연관 짓기엔 무리가 따르고요. 조코비치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할 이유가 없었잖아요.
이수민 리포터: 하지만 이번 입국 거부 사태 및 조코비치 측의 입극금지 효력정지 소송 과정을 통해 조코비치에 대한 동정론이 크게 고개를 들고 있는 분위깁니다.
실제로 조코비치에 대한 백신면제 특혜도 전혀 없었던 사실도 드러났고요, 더욱이 조코비치는 나름 호주 입국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멜버른 공항에서 매우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던 점, 그리고 이번 사태의 원인이 호주 테니스 협회와 빅토리아 주정부, 그리고 연방정부간의 업무적 난맥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조코비치에 대한 동정론이 상당히 커지고 있는 분위깁니다.
심지어 연방법원 판사도 조코비치가 호주 입국을 위해 더 이상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고 호주에 입국해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금 했다고 질타했을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