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부부관계와 같이 친밀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지배(coercive control)’를 별도의 범죄 구성요건으로 정해 독립된 범죄행위로 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호주 법조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강압적 지배’ 문제가 시급히 해결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하는데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칫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가 양산될 수 있다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강압적 지배’를 별도의 범죄행위로 규정하기에는 호주의 형사사법제도가 미흡한 부분이 있어 오히려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가 양산될 수 있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조은아 프로듀서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 마련합니다.
진행자: 호주의 가정폭력법 개정을 통해 협박과 스토킹 및 이 외 다른 형태의 ‘강압적 지배’를 별도의 범죄 구성요건으로 보고, 독립된 범죄행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면서요.
조은아: 네, 그렇습니다. 연방 의원들과 가정폭력 피해자의 가족들은 물론 저널리스트들도 가정폭력의 한 형태인 ‘강압적 지배’를 각 주 및 테러토리 정부가 불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여성잡지 마리 클레어(Marie Claire)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 캠페인에는 연방 야당인 노동당의 린다 버니 가족부 예비 장관도 참여하고 있죠?
조은아: 네, 버니 의원은 ‘강압적 지배’는 사람들의 삶에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만연된 문제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는 “각 주 및 테러토리 정부는 이를 면밀히 검토해 범죄로 규정할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전문가들은 ‘강압적 지배’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Labor's spokesperson for families and social services Linda Burney. Source: AAP
하지만 일부는 ‘강압적 지배’를 별도의 혹은 독립된 범죄행위로 규정하기에는 호주의 형사사법제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우려하는데요, 즉 취약계층 혹은 소외된 계층에게 더 큰 피해가 양산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선 ‘coercive control’ 즉 ‘강압적 지배’가 무엇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조은아: 네, ‘강압적 지배(coercive control)’는 부부와 같은 친밀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고의적 학대의 한 양상입니다. 여기에는 감정적, 심리적 조종 및 학대를 포함해 사회적, 재정적 통제도 포함되는데요,
즉 물리적 학대가 아닌 개인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깎아내리는 감정적, 심리적 학대를 말합니다. 정서적 괴롭힘, 위협이나 협박, 창피 주기 등의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학대 행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진행자: 뉴사우스웨일즈여성법률서비스(Women’s Legal Service NSW)에 따르면 강압적 지배는 가정폭력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일어나는 가장 흔한 형태의 위험 요소인데요.
조은아: 네, 맞습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검시관법원의 검토에서도 친밀 관계의 파트너에 의한 살인 사건의 99%에서 “피해자에 대한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행위”가 선행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진행자: 해외에서는 가정폭력법 개정을 통해 ‘강압적 지배’가 범죄 행위로 규정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은아: 네,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서 가정폭력법 개정이 이뤄져 왔는데요, 스코트랜드와 잉들랜드, 웨일스에서는 ‘강압적 지배’가 새로운 범죄 행위로 규정된 바 있습니다.
진행자: 호주의 경우는 어떤가요?
조은아: 호주 내 일부 주와 테러토리 정부는 ‘강압적 지배’라는 학대의 한 형태를 민법상 인정하고 있는데요, 호주에서는 태즈매니아주가 ‘강압적 지배’ 구성 요소를 커버하고 있는 특정 범죄 행위를 규정한 유일한 주정부입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와 퀸즐랜드주는 현재 ‘강압적 지배’를 불법화하는 안을 검토 중인데요, 지난해 9월 뉴사우스웨일스주 노동당은 가정폭력 희생자 프리시 레디(Preethi Reddy) 씨의 이름을 따 일명 프리시법이란 개별 법안을 의회에 발의한 바 있습니다.
진행자: 프리시 씨, 기억납니다. 시드니의 치과의사로 거의 2년 전에 전 파트너에 의해 살해돼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는데요.
조은아: 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법안 발의가 이뤄진 그 다음 달에 의회 합동 특별 위원회를 설립해 ‘강압적 지배’와 법안 개정 가능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이처럼 ‘강압적 지배’를 별도의 또는 독립된 범죄행위로 규정해야 한다는 촉구가 일고 있지만 일부 가정폭력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어요.
조은아: 네, 가정폭력 반대 기구인 인터치다문화센터(InTouch Multicultural Centre Against Family Violence)는 ‘강압적 지배’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특정 지역사회에 위험성이 있어 이것이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인터치다문화센터는 그것이 우선 해결되지 않는다면 “향후 ‘강압적 지배’에 대한 범죄 행위 규정은 호주의 취약 계층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소외 계층에 대한 과도한 정책과 인종에 기반한 표적수사(racial profiling)로 인한 역효과를 너무 자주 봐왔다는 건데요
인터치 센터의 미갈 모리스 CEO는 “강압적 지배 법안을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상당한 구조적∙체계적 이슈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행자: 가정폭력 사건에서 “오인(misidentification)”하는 일이 하나의 우려 사항으로 제기됐죠?

nTouch Multicultural Centre Against Family Violence CEO Michal Morris. Source: SBS News
조은아: 네, 모리스 CEO는 “특히 커플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경우 경찰이 출동했을 때 많은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 상황 파악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때로 부당하게 가해자로 오인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건데요,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경찰이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진행자: 호주의 형사사법제도가 독립된 범죄행위를 뒷받침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건데, 그 주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은아: 모나시가정폭력예방센터(Monash Gender and Family Violence Prevention Centre)의 케이트 피츠기본 소장은 ‘강압적 지배’를 독립된 범죄행위로 규정해 시행하는 데는 경찰들의 훈련이 부족하고 “증거제출책임(evidentiary burden)”에 대해 더 세부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피츠기본 소장은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행위는 어떤 특정 사건에서 꽤나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는 행동 양상의 하나라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현 단계에서 ‘강압적 지배’를 하나의 독립된 범죄 행위로 규정할 경우 보호가 필요한 여성들이 법원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호주의 현 형사사법제도가 이 부분을 다루기에는 준비가 안 됐다는 거군요.
조은아: 네, 그렇습니다. 케이트 피츠기본 소장은 독립형 범죄로 성급히 규정할 경우 ‘의도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 소외된, 다문화 배경의 가정폭력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하는데요.
그는 “징벌적 개입 제도보다는 ‘강압적 지배’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해 이들 피해 여성과 지역사회를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관련 단체와의 협력이 필요할 것 같네요.
조은아: 네, 바로 보셨는데요, 인터치다문화 센터의 미갈 모리스 CEO와 모나시가정폭력예방센터의 케이트 피츠기본 소장은 가정폭력 대응 기구나 단체와 협의를 하는 것에서부터 그 같은 방안 강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에 대한 교육 역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지역사회 내 ‘강압적 지배’가 가정폭력의 한 형태라는 인식이 자리잡히기 위해서는 교육이 정말 필요할 것 같아요.

Nithya Reddy's sister Preethi was murdered by her ex-partner in 2019. Now, Nithya is campaigning to criminalise coercive control. Source: SBS News
조은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가정폭력 희생자 프리시 레디 씨와 자매지간인 니샤 레디 씨는 그녀의 언니가 ‘강압적 지배’에 대한 이해가 있었더라면 여전히 생존해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레디 씨도 강압적 지배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데요, 가정폭력이 때로 물리적 폭력 행위에 국한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연구들을 보면 ‘강압적 지배’가 가정폭력 사건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동당의 버니 의원도 ‘강압적 지배’가 가정폭력의 한 형태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그렇다고 지적했는데요,
그는 수년 동안 ‘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나 삶 전반이 지배당해 온 사람들은 정말 본인이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 등 그 영향은 지대하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파트너가 그 같은 정서적, 심리적 학대를 할 경우 이는 정상이 아닌 가정폭력의 한 형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조은아: 네, 피츠기본 박사는 이 이슈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데요, 즉 법안 개정에 앞서 모든 옵션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는 겁니다.
모리스 씨도 이에 동의하는데요, 모리스 씨는 법안이 졸속하게 잘못 제정되면 취약 계층이 교도소에 갇히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즉 강압적 지배를 잘못 규정할 경우 취약 계층은 더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진행자: 교육을 통한 강압적 지배에 대한 인식 제고가 정말 중요할 것 같네요. 이 경우 가정폭력 생존자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더 다양한 각도에서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본인이나 지인이 가정폭력이나 성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면 1800 737 732번으로 1800RESPECT에 전화하거나 웹사이트 를 방문하십시오. 긴급 상황인 경우 000번으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이민 및 난민 출신의 여성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1800 755 988번으로 전화하거나 를 방문해 가정폭력방지다문화센터 인터치(inTouch, the Multicultural Centre Against Family Violence)에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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