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배우 정은혜, 호주 방문… “그림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다”

정은혜는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여성 ‘영희’ 역을 맡은 캐리커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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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Eun-hye, the “Our Blues” star visited Australia this month. Credit: Leeseo & momentwith photographer

Key Points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배우 정은혜 호주 방문
  • 정은혜, 그림 재능이 있는 다운증후군 여성 ‘영희’ 역
  • 새로운 다큐멘터리 ‘니얼굴’… 그림을 통해 은혜 씨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 담아
“너 날 지하철에 버렸지? 나쁜 년”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지닌 영희 역을 소화한 정은혜 배우는 ‘리얼’한 연기로 장애인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과 애증을 사실감 있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지민 배우는 발달 장애인인 언니 영희의 존재를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동생 영옥 역을 맡았다.

발달 장애인 언니의 존재 때문에 정준(김우빈)을 사귀는 것도 꺼려 하던 영옥에게 어느 날 영희가 나타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영희의 보호자까지 된 영옥은 언니의 등장이 불편하기만 하다. 장애인 시설에 언니를 맡겨두고 돈을 벌러 간다던 영옥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길이 뜸해진 상태였다.

영옥, 정준과 제주도에서 며칠간 행복한 시간을 보낸 영희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남겨두고 다시 장애인 시설로 돌아간다.

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영옥은 그만 오열하고 만다.

정은혜 씨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게 된 데는 노희경 작가의 노력이 한몫을 했다.

노희경 작가는 2020년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던 정은혜 씨의 개인전에 방문했고, 이후 정은혜 씨를 인터뷰하고 섭외까지 할 수 있었다.

전문 배우가 아니었기에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정은혜 씨는 “대선배님들과 함께 연기를 하고 싶었고 긴장이나 떨림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은혜 씨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김우빈 배우와 핸드폰 가게에서 핸드폰을 산 장면과 영옥이와 헤어져 다시 시설로 돌아간 장면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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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Eun-hye is a Korean caricature artist and one of the stars of the series “Our Blues” Credit: SBS Korean

드라마 속 영희와 현실의 은혜

은혜 씨 어머니인 장차현실 씨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영희는 새로운 사람이 아닌 평소 가족들이 알고 지냈던 은혜 모습 그대로였다고말했다.

장차현실 씨는 “작가가 은혜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다운증후군을 지닌 발달장애인의 삶을 그대로 녹여냈기에 가족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라고 말했다.

장차현실 씨는 “평소 뜨개질 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는 은혜의 모습이 드라마에 그대로 표현됐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영희와 현실의 은혜에 다른 점도 존재한다.

드라마 속 영희는 동생에게 돈을 벌어서 수술을 시켜달라고 조르지만, 은혜 씨는 얼굴 수술을 하고 싶지 않다며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 서동일 씨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존재가, 그리고 다운증후군의 존재가 이렇게 주목받고, 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은혜 씨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졌다”라며 “심지어 호주에서도 한국 못지않은 열렬한 관심을 표현해 주셨다. 호주에 있는 팬들이 알아보시고 사진을 찍자고 하셔서 인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은혜 씨는 호주에 와서 인기가 실감 났다며 “바쁜 스케줄 때문에 생활이 더 바빠졌고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알아보시곤 하는데 좋기도 하지만 좀 부담도 된다”고 털어놨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 ‘그림’

은혜 씨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있는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장차현실 씨는 처음에 은혜 작가가 그림을 그렸을 때는 사람만 그린 것이 아니라며, 처음에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은혜 작가가 사람 얼굴 그리는 걸 특히나 재미있어했다고 말한다.

은혜 씨와 가족들은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림은 실제로 은혜 씨와 사람들을 이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됐다.

서동일 씨는 은혜 씨가 그림을 그려서 드리면 주문하신 분들이 좋아하고, 잘한다고 피드백을 주신다며 그러면서 은혜 씨가 자존감과 존중받는 느낌을 알아가게 됐다며 이제는 작가라는 지위까지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은혜 씨는 작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열심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그림 실력이 출중한 발달장애인 역을 맡았던 은혜 씨가 처음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은혜 씨의 엄마 장차현실 씨는 화실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만화가다.

서동일 씨는 “이전까지 은혜는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혼자 방에만 있었다”라며 가족들은 은혜 씨의 방을 동굴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장차현실 씨는 은혜 씨에게 화실에 나와 청소라도 하면 용돈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화실에 온 은혜 씨는 청소에는 관심이 없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은혜 씨가 학생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보고 시샘을 냈고, 학생들이 없을 때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장차현실 씨는 “막상 은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니까 가르친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장차현실 씨는 “그림 그리는 방식이 굉장히 자유롭고 오히려 훨씬 더 창의적인 새로운 방식의 그림 그리기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내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은혜 작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조력해 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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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left: Seo Dong-il, Jung Eun-hye and Jang Cha Hyun Sil Credit: SBS Korean

다큐멘터리 ‘니얼굴’

은혜 씨가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니얼굴’은 아빠 서동일 씨가 감독을 맡았다. 엄마 장차현실 씨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서동일 씨는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명령불복종 교사’ 등을 감독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2014년에는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서동일 씨는 “은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은혜가 세상에 태어나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고, 은혜가 어떤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다. 은혜를 약간 하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어떤 욕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그런 존재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서동일 씨는 “하지만 은혜가 예술을 도구로 삼아 스스로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라며 “은혜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그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고, 예술은 그 과정에서 훌륭한 도구로서 작동을 했다”라고 말했다.

서동일 씨는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예술이 어떻게 은혜 씨의 삶을 구원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은혜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은 멀리서 보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혹독한 장소라고 말했다.

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도 없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야 하고, 겨울에는 난방 도구도 없이 칼바람이 이는 곳에서 장갑을 끼고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차현실 씨는 “하지만 은혜는 한 번도 싫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라며 “꿋꿋이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사람들을 만나며 성장하고 있고 부부가 가장 많이 감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은혜 씨가 뜨거운 의지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아빠 서동희 씨는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고, 만화가인 엄마 장차현실 씨는 이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었다.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

서동일 씨는 “타고난 외모, 어눌한 말투, 행동거지 등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만 해도 은혜 씨가 지닌 요소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이상하고 낯설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라며 “은혜 작가가 이전까지 사람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은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지만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은혜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굉장히 수평적이고 따뜻했다”라고 말했다.

은혜 씨는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처음으로 받아봤다.

그리고 4,000명의 미소를 받으며 이전까지 불편한 시선으로 받았던 은혜 작가의 마음의 상처 역시 치유가 되기 시작했고 온전한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것이 아빠 서동희 감독의 설명이다.

장차현실 씨는 은혜 씨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매번 확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은혜 작가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고 “예쁘게 그림 그려주세요”라고 요청을 했다며, “하지만 은혜 작가가 그려준 그림들은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다”라고 웃음 지었다.

호주에서 바쁜 시간을 보낸 은혜 씨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한 가지 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고, 동료들과 함께 빨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문호리에는 은혜 씨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발달장애인 동료 20명이 있다. 은혜 씨 역시 이곳에서 예술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예술 노동자들은 당연히 최저 시급을 받고 있다.

은혜 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썸을 타는 사람이 있다며, 빨리 한국에 가서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서동일 씨는 은혜 씨가 벌써 면세점에서 남자 동료에게 줄 선물을 샀다고 말했다.

낯선 도시 시드니를 떠나며

정은혜 씨는 GP엔터테인먼트와 돌봄 NDIS의 초청으로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호주를 방문해 한인 사회에 힐링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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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ganisers held a face drawing contest that received almost 120 submissions. Credit: Leeseo & momentwith photographer
정은혜 씨는 캐리커처 전시회 , 니얼굴 다큐멘터리 상영회, 시드니문화원에서 작가와의 대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은혜 씨가 호주에 오기전 주최 측은 니얼굴 그리기 대회를 열었고, 여기에는 총 118점의 얼굴 그림이 출품됐다. 유치원생부터 1952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층 및 장애인이 함께 참여했으며 정미연씨가 대상인 돌봄상을 수상했다.

장차현실 씨는 "호주 방문은 은혜씨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이었다. 호주 한인분들의 큰 사랑과 환영을 받았다. 여러 일정 속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은혜 씨는 “제 팬들은 저를 매우 좋아한다. 제가 배우로 또한 작가로 훌륭한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팬들에게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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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3 November 2022 12:12pm
Updated 24 November 2022 9:13am
By Justin Sungil Park, Carl Dixon, Euna Cho
Sourc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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